신연당 유이태

산청지역의 인물

신연당 유이태

Person

유이태(劉以泰) 선생은 자는 백원(伯源), 호는 신연당(新淵堂), 원학산인(猿鶴山人), 인서(麟西), 본관은 거창(居昌) 이다.

숙종의 어의(御醫)를 지냈으며, 이때 공로로 안산군수(安山郡守)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외가인 산음(현 산청군 생초면 신연리)에서 의술활동을 펼쳤다.

1696년(숙종22) 유이태는 전국에 두진(痘疹:천연두)과 마진(痲疹:홍역) 으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자극을 받아 천연두와 홍역 예방․ 치료에 대한 의학전문서인 「마진편(痲疹篇)」을 펴냈다. 청나라 고종의 두창을 고치는 등 의술이 신기에 가깝다하여 중국의 명의 편작에 비유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잡병에 관한 「실험단방(實驗單方)」, 그의 경험을 적은 「인서문견록」 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 중 「인서문견록(麟西聞見錄)」은 책 이름만 전할뿐 실물이 공개된 바 없었다. 삼목영(三木榮)이 저술한 「조선의서지(朝鮮醫書誌)」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두 책의 사본을 소개하면서 "인서문견록은 경험방 중에서 아주 우수한 것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2009년 산청한방약초축제 개최 때 일본 무전(茂田) 행우서옥(杏雨書屋)에 소장되어 있던 「인서문견록(麟西聞見錄)」이 공개되었다.
이 책은 서문이 붙어있는 장서본으로서 연구가치가 큰 것으로 여겨진다.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대개 사람의 한평생을 바라보건데 병이 없는 자가 드물다. 그렇지만 병든 자로 하여금 능히 자기의 병을 조치할 수 있는 방도를 알려준다면 반드시 몸이 훼상하는데 이르지 않아도 될 것이니 가히 조심하지 않으랴.

내가 평소에 경험한 여러가지 잡병 치료법과 여기저기서 얻어 들은 단방을 한 책에 수록하여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하고자 했으니 구료하는 방도가 비록 의문(醫門)의 전서와 같이 상세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날마다 쓰는 데는 조금이라도 보탬이 있을 것이다. 기축년(1709년) 가을(음8월) 인서노부가 쓰다"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의술 설화로 유이태 설화가 가장 많이 채록되어 있는데, 산청, 함양, 거창, 하동 등에는 그의 설화인‘유이태탕’, ‘순산비방’등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의 묘소는 산청군 생초면 갈전리 산35-1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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