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산국악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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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남 산청군 신등면 법물길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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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 관리부서 : 산청군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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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
인지재란 당호는 논어에서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을 ‘知’라하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을 ‘仁’이라 한데서 따온 말이라 한다. 1816년(순조 16, 丙子)에 현 위치에 건립 후 1898년(광무 2)에 중건했다고 한다.
개요
산청 인지재 (山淸 仁智齋)
인지재란 당호는 논어에서 배우기 싫어하지 않음을 ‘知’라하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을 ‘仁’이라 한데서 따온 말이라 한다. 1816년(순조 16, 丙子)에 현 위치에 건립 후 1898년(광무 2)에 중건했다고 한다.
인지재는 다각형에 가까운 대지에는 편액한 강당, 좌우에 부속건물을 둔 형태였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중건시 건물중 강당과 대문채 강당과 대문채, 측간 1동 및 최근에 건축한 양식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대지 서측에 자리잡은 단층의 양식주택은 최근에 건축한 건물이며, 측간도 강당보다 후대 지은 건물이다. 강당과 대문채는 대지에서 서측으로 약간 편재되어 있으며, 1898년 당시의 배치형식을 살펴보면 당초 대지 남측에 대문채를 두고, 그 북측에 인지재라 만 남아 二자형의 배치를 보인다.
인지재라 편액한 강당은 정면 5간 측면 2간반의 규모로, 전반적으로 전후퇴 및 수장공간이 발달한 평면구성을 보인다. 전열에 폭 1.3m의 개방된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고, 2열과 3열에는 온돌방과 마루로 실내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즉 2열의 실구성은 정면 좌측부터 온돌방 2간, 마루 2간, 온돌방 1간의 순이며, 3열은 온돌방 2간, 서고 2간, 온돌방 1간의 순이다. 마루 후부에 2간 규모의 서고를 설치한 것은 흔치 않은 것이나 구조수법으로 보아 중건이후 근대기에 들어와 서적을 보관 관리하기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면 맨 우측 간을 제외한 나머지 4간의 실(室) 후부(後部)에는 모두 벽장이 설치되어 있다.
창호형식과 개폐방식을 살펴보면 정면 온돌방 매 간에는 낮은 머름위에 두 짝 여닫이 띠살창을 시설하고, 그 안쪽에 두 짝 미닫이창을 달아 놓았다. 띠살창의 문인방 상부에는 실내의 오염된 공기를 외부로 배출하기 쉽도록 정방형의 작은 교살의 환기창을 달아 놓았는데 이는 근대기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 좌우 양측 온돌방의 측면에도 외짝 또는 두 짝의 여닫이문을 달아 놓았다. 강당의 중앙부에 위치하는 마루와 온돌방 사이의 청방간에는 세 짝 들어열개 분합문을 달아 놓았다.
대문채는 정면4간, 측면 1간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평대문으로, 양측면에는 풍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평면은 정면 좌측부터 광 2칸, 대문간 1칸, 창고 1칸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도로에 면한 남면의 중방 하부에는 막돌과 진흙으로 반화방벽을 쌓았다. 대문간에는 두 짝 판문을 안여닫이로 설치했다.
인지재는 치목, 구조수법 등에 두드러진 특징은 없으나 중앙 마루 후부에 서고를 둔 점과 평면이 전후퇴가 발달한 겹집유형이라는 점과 입면구성에서 장식적 성격이 강하다. 이는 근대 초기 한옥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19세기말 산청지방 재실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대문채는 큰 특징이 없으나 전통양식에 따라 건축한 간략한 평대문이다.
문화재지정 현황
문화재구분 | 지정번호 | 지정일 | 제작연대 |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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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 433호 | 2008.2.5 | 1816년 |
오시는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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