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에게 바란다SANCHEONG GUN

군수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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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
내용 1.산청읍 소개란- 역대 산청면면장은 없다. 읍승격이전에 봉직한 면장은 아예없다.

본래 산청군 수곡면의 지역으로서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므로 묵실
또는 묵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장동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지수면에 편입되었다가 그뒤 산청면(읍)에 편입됨 –쌓여-싸여

2.차황면소개란-해방전 역대면장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해방전에도 차황면이 있었을 것이다.

3.생초- 역대면장 소개에 해방전 면장이 나오지 않는다. 마을 유래 소개도 콘텐츠가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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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민안부 선생은 멀리 남쪽을 향해 이 고장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 한계에까지 내려와 숨어 지내며, 산과 강을 벗삼아 농사를 짓고 스스로 위안하며 살았다.
또한, 그의 아들 민유도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벼슬하지 않았다 –한계→한개

4.오부면 소개에서 5대 면장 소개에서 <김정환(金貞煥)19136~ 1942>으로 나와있다. 고쳐야 한다. 그리고 이분은 금서면장 그리고 차황면장 소개에는 사진이 있다. 오부에만 없다.

중촌리(中村里)는 본래 산청군 부곡면 지역으로서, 약 3백년 전에 남양(南陽) 홍씨(洪氏)가, 그 후에 순흥(順興) 안씨(安氏)가 들어와 정착하였다. 앞산이 중매봉(中梅峰)이고 또 옛 부곡면의 복판이라 하여 중촌(中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소룡산(巢龍山)의 정기를 받아 인심이 좋은 곳인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휴동, 대현동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중촌리라 하고 오부면에 편입되었다. 오휴동은 오솔이라고도 하는데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하던 중 흰 까마귀가 막대기를 물고 가는 곳을 보고 뒤따라가니 홍굴(洪窟) 앞 바위에 쉬므로 그 아래에 자리를 잡아 산 것이 마을을 이루어 오휴(烏休)라고 했다 한다.→선조(先祖)로 한자병기해야 될 듯. 임진왜란은 임금 선조때 였으므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 점촌마을은 조선시대에 오부면 상점동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곡동, 북동, 선양동과 함께 내곡리에 속하면서 점촌으로 개칭하였다. 점촌은 점토가 많이 생산되어 옛날부터 약탕관이나 질솥 등을 만드는 옹기 공장이 있었다 한다. -<조선시대에 오부면 상점동>조선시대면 오부면이 아닐텐데

5.금서면 - 평촌리(坪村里)는 본래 금서면 지역으로 들 옆에 있으므로 들말 또는 평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양동을 병합하여 평촌리라 하고 금서면에 편입되었다 -본래 금서면 지역→본래 금서면 지역

매촌 소개도 본래 금서면 지역으로 되어었다.

6.시천면-해방전의 면장 명단이 없다. 해방전에도 면은 있었지 않는가?

7.단성면- 역시 해방전 역대면장이 없다.

8.신안면- 해방전 역대면장 명단이 없다.

●역대순수 명단이 안보네요. 해방전 명단도 없고. 조선왕조실록을 추적하며 역대 산청현감, 단성현감도 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역대 국회의원도 잘 찾을 수 없네요.
파일
작성일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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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군청 행정과 연락처 055-970-6154
답변일자 2024.02.27
답변내용 1. 평소 군정 발전을 위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2. 귀하의 민원 내용은 홈페이지 내 읍·면에 대한 콘텐츠 추가 및 오류 수정건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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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 궁궁한 사항은 행정과 전산정보담당(☎970-6154)으로 연락주시면 상세히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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