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

국가지정문화재

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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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
  •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

  • 대표전화

    055-970-6441~2

상세설명

  • 관리부서 : 상산김씨임계공종중
  • 대표전화/팩스 : TEL 055-970-6441~2 / FAX 055-970-6409

요약정보

성종 11년(1480)에 작성된 재산분배 기록이다. 이름높은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상산 김씨 가문의 16대손인 김광려, 김광범 형제와 여식인 전좌랑 한건의 처 등 3남매가 부모가 돌아가신 후 물려받은 토지와 노비를 서로 상의하여 분배하는 화회문기(和會文記)이다.

개요

성종 11년(1480)에 작성된 재산분배 기록이다. 이름높은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상산 김씨 가문의 16대손인 김광려, 김광범 형제와 여식인 전좌랑 한건의 처 등 3남매가 부모가 돌아가신 후 물려받은 토지와 노비를 서로 상의하여 분배하는 화회문기(和會文記)이다.

재산분배는 성별순이 아닌 나이 순으로 하여 맏아들 김광려, 한건의 처, 김광범의 순서로 분배하였고, 마지막에 각자의 이름을 적고 그 밑에 수결(지금의 서명)을 하였다.

조선시대 사회 및 가족제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또한 당시 우리 민족의 남녀평등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전문설명]
이 문서(文書)는 상산(商山) 김씨(金氏) 16세(世)가 되는 진사(進士) 김광려(金光礪), 유학(幼學) 김광범(金光範) 형제(兄弟)와 여서(女壻) 좌랑(佐郞) 한건(韓健)의 처(妻) 삼남매(三男妹) 가 모여 부모(父母) 전래(傳來)의 미분(未分)된 토지와 노비를 분배(分配)하는 화회문기(和會文記)이다.

상산(商山) 김씨(金氏) 시조(始祖)는 김수(金需)로 려조(麗朝)에서 보윤(甫尹)을 역임한 바 있으며 19세(世) 되는 김행(金行)은 문과출신(文科出身)으로 만호(萬戶)를 거쳐 교리(敎理)등 관직을 역임했는데 배우자인 숙인(淑人) 창령조씨(昌寧曺氏)는 바로 문정공(文貞公) 남명(南冥) 조식(曹植)의 여식(女息)이다. 이들 여서(女壻)로는 남명(南冥)의 제자(弟子)되는 문정공(文貞公) 동강(東岡) 김우옹과 또한 차녀(次女) 여서(女壻)는 임란(壬亂) 때 의병장(義兵將)인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이름높은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가 된다.

21세(世)가 되는 동산(東山) 김명봉(金命鳳)도 임란(壬亂) 때 공훈(功勳)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일등(一等)에 녹훈(錄勳)되었는데 이와같이 상산(商山) 김씨가(金氏家)에는 내외척(內外戚)을 통(通)해 이름있는 인물(人物)이 많이 배출(輩出)된 가문(家門)이다. 분금(分衿)은 동생(同生)의 생년순(生年順)으로 장남(長男)인 진사(進士) 김광려(金光礪), 다음 여서(女壻) 전좌랑(前左郞) 한건(韓健)의 처(妻), 그리고 끝으로 말자(末子)인 유학(幼學) 광범(光範)의 순(順)으로 분배(分配)되고 있는데 분배(分配)가 끝난 문기말(文記末)에는 각자(各自) 이름 밑에 수결(手決)을 하였으며 출가(出嫁)한 여식(女息)은 전좌랑(前左郞)인 부군(夫君) 한건(韓健)이 대신(代身) 수결(手決)하고 있다. 문서(文書)의 기록(記錄)은 말자(末子)인 유학(幼學) 김광범(金光範)이 묵서(墨書)로 필사(筆寫)하였다. 이 문서(文書)는 조선시대 전반기(前半期)의 당시 경제사(經濟史) 및 사회(社會)·가족제도(家族制度)를 알 수 있는 자료(資料)이다.

문화재지정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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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020호 1990.3.2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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